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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장부라 하랴’ 남이(南怡)

이 시를 지은 남이(1441-1468) 장군은 담대한 무인 기질의 호쾌하기 짝이 없는 쾌남아였다.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토벌에서 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다. 이러한 공과 세조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남이는 27세 때 공조판서, 28세 때는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되는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3일 뒤에 세조가 세상을 떠났고, 사이가 좋지 않던 예종이 즉위했다. 예종은 즉위하던 그날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번개같이 해임해버렸다. 남이의 급격한 부상을 몹시 시기하고 질투해 왔던 조정의 신하들이 ‘이 때다’하고 본격적으로 그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달포 뒤에는 간신 유자광에 의하여 역모 혐의가 씌워졌고, 그로부터 불과 3일 뒤에 저잣거리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당했다.

위의 작품은 혜성처럼 찬란하게 등장했다가 별똥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던 비극적 풍운아 남이가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뒤 백두산에 올라가서 지었다는 시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모두 다 없애’버리다니, 그 시어의 스케일부터가 독자들의 입을 딱 벌리게 한다. 이것이 단순한 허풍이나 수사적 과장에 불과 할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남이장군의 웅혼한 생애에 상응하는 호쾌하고도 장쾌한 기상의 소산일 것이다.

게다가 남이는 20대의 젊음이 가기 전에 나라를 태평하게 하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다. 후세 사람들께 대장부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포부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천적으로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제 넘는 질문을, 그것도 아주 심하게 주제 넘는 질문을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던져보고 싶다. 그대들은 지금 어떤 꿈들을 꾸고 있는가? 그 꿈이 이루어지면 후세 사람들이 대장부라 불러줄, 그런 꿈들을 꾸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