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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국제 예술 영화제에 정식 초청된 김현옥 교수

“콜레보레이션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싶어요”


지난달 20일부터 10일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0회 국제 예술 영화제’에 우리학교 김현옥(무용학·부교수) 교수의 ‘PASSION & REBORN’ 작품이 미디어아트 부문으로 선정돼 정식 초청받았다. 올해 10회를 맞은 캐나다 국제 예술 영화제는 유럽, 남미, 북미 등의 전 세계 TV 프로그램 바이어들이 참석해 작품을 감상하고 저작권을 구매하는 권위 있는 페스티벌이다. 김현옥 교수를 만나 이번 작품과 작품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동·서양이 접목된 새로운 작품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동·서양이 접목된 새로운 작품이다” 김현옥 교수의 ‘PASSION & REBORN’ 작품을 본 캐나다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서 영감을 받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과 이태리 회화를 직접 찾아보면서 안무를 제작한 무용영화다. 작품 1부에는 이태리 회화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해 서양적 색채를 담았고, 2부에는 우리나라의 승무에서 영감을 받아 동양적 색채를 담았다. 이번 초청에 대해 김 교수는 “3박 4일간 무용을 하며 촬영한 영화가 공식초청돼 영광입니다”고 말했다.

●무용과 영상의 만남, ‘비디오댄스’
비디오댄스란 무용 퍼포먼스를 영상에 담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김현옥 교수는 1992년 국내 최초로 ‘비디오댄스’를 소개한 장본인이다. 사진 작가, 비디오 작가와 같이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융합을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융합의 시대입니다. 예술도 마찬가지로 시대에 발맞춰 융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용의 가장 큰 특색이자 단점이 순간적이고 유한적이라는 것이다. 이 단점을 영화라는 매체와 융합한 비디오 댄스가 극복했다.

●예술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싶다
김 교수는 스스로가 매체가 되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다른 예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운동 역학적인 면이 무용의 매력이라며, 앞으로 영화감독이나 패션디자이너 등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콜레보레이션을 진행해 예술의 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시대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예술도 다양한 매체들과 접목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면서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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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