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돌멩이처럼 단단해질 때나, 칼끝처럼 날카로워질 때, 그것을 들으면 마치 푸른 하늘처럼 아늑해지는 음악이 있다. 나에게 있어 그런 것 중 하나가 구노(Gounod)의 ‘아베 마리아’다. 프랑스의 작곡가 구노는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술적 환경에서 자란 그는…
아무리 예술 쪽에 문외한이라도 빈센트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37세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그토록 위대한 창조자로 우리 곁에 살아 있다.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개신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 들판을 뛰어다니곤 했던 그는 16세 때 숙부가 일…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소설로 표현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단어는 ‘불행’이었다. 유대인 상인 헤르만 카프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두 형이 어려서 죽었으므로 세 여동생 앞에서 맏이로서의 역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인물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설을 읽히는 19세기 소설가로 꼽힌다. 스스로 ‘지적인 프롤레타리아’라 부른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구 못지않은 시련을 겪은 문학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육군 공병학교를 졸업한 그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다. 어머니가 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한 번 청소했다고 해서 방 안이 언제나 깨끗한 채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도 그렇다. 한 번 반성했다고 해서 그 맑음이 늘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어제 가진 좋은 뜻이라 할지라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 모스크바의 톨스토이 박물관을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인은 한국인이라고 한…
일본 최대의 호황기. 그때 일본 경제를 앞장서 이끈 인물이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다. 우리나라 사람 역시 그의 브랜드 ‘내셔널’과 ‘파나소닉’을 한번쯤 써보지 않은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4학년때 학업을 중단하고 살길을 찾아 오사카로 갔다. 소년 마쓰시…
몇 년 전 라는 영화로 젊은이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레이 찰스(Ray Charles). 13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블루스(blues)와 솔(soul) 음악의 아버지로 일컫는 그는 참으로 험한 성장기를 보냈다. 일곱 살 무렵 시력을 잃어버린 그는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여읜 뒤 어둠 속의 아들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
1870년, 16세의 어린 랭보는 고향 아르덴을 떠나 파리로 갔다. 무임승차 혐의로 며칠을 감옥에서 지낸 그는 국민군에 들어가서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이듬해 겨울 다시 파리로 가서 굶다시피 하며 지내던 랭보는 시인 폴 베를렌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많은 문인들을 만났지만 방…
춤은 인류가 가장 먼저 만들어낸 원초적인 예술 양식일 것이다. 어떤 도구도 없이 그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무용은 미술, 음악, 문학 등 다른 분야에 비하면 훨씬 늦게 현대화되었다. 다른 장르의 예술들이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 따위를 거치면서 현대화…
1969년 여름, 뉴욕 근교의 우드스톡에서 음악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이 음악제는 무산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막스 야스거라는 이가 베델의 자기 농장을 제공하겠노라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음악제는 가까스로 베델 평원에서 열렸고, 그것은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큰 무대로 남…
“나는 사업미술가가 되고 싶었다. 사업은 가장 매혹적인 예술의 하나다.” ‘팝아트’라는 말을 미술의 한 장르에다 올려놓은 앤디 워홀은 그렇게 말했다. 얼핏 예술과 사업은 그리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낱말이지만 그는 당당하게도 스스로를 미술사업가라고 불렀다. 워홀에 대한 비판은 만만치 않았다. 상…
흔히 그러하듯이, 갑갑한 청춘이었다. 무엇이 불안한 내 정신을 풀어줄까? 스무 살 무렵, 마치 날벌레처럼 흐르다가 문득 집어들었던 책,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면서, 지금까지도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 있는 사람이 프로이트다. 그는 대단한 일을 해낸 이들 중에서 흔치 않게…
“나의 전공 분야는 행동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엄청난 땅 인도를 식민의 족쇄에서 풀어낸 그의 일생은 행동으로 이어져 있다. 굶기, 집 짓기, 실 잣기, 비료 만들기, 가축 기르기, 환자 돌보기 등 그는 입술이 아니라 맨발로 자신의 이상을 만들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