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되는 ‘현상’과 사물의 ‘실재’는 동일한가? 예를 들어 강의실의 칠판은 짙은 초록색을 띠고 있으며 만져보면 매끄러운 감촉을 준다. 이러한 우리의 경험을 의심한다는 것은 어리석게만 생각된다. 그러나 칠판의 색깔은 보는 방향이나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으며, 또한 현미경을 통해 보면 칠판의 표면은 거칠고 울퉁불퉁하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결국 이것은 우리에게 감각되는 것이 사물의 실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안겨준다. 이것은 우리가 칠판의 참된 모습을 결코 알 수 없으며, 다만 색깔이나 촉감 등의 감각자료만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다.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국의 철학자 버클리(1685-1753)는 칠판처럼 우리와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사물은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물론 우리는 어떤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색깔이나 촉감 등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사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감각될 때뿐이며, 감각되지 않을 때는 그것이 존재하리라는 것조차 알 수 없다. 이처럼 버클리는 우리가 감각에 의해 얻어진 자료를 가질 뿐이지 사물의 존재 그 자체를 감각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사물의 배후에 실재
도서명 :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 출판사 : 철학과현실사 저자명 : 김영진이 책은 우리 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분석철학과 윤리학 등을 가르쳤던 김영진 교수의 학문적 결실을 담고 있다. 그는 인간의 질병을 육체적 병, 정신의학적 병, 그리고 철학적 병으로 분류하고, 앞의 두 가지 질병은 의학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반면에, 세 번째 병은 철학적 작업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혈압, 당뇨병, 암 등과 같은 육체적 병이나 우울증, 공포증, 조울증,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의학적 병과는 달리, “일차적으로 그 병을 가진 사람에게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고통과 나쁜 영향을 주는 병”을 철학적 병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한 가지 견해만을 옳다고 신봉하는 광신주의, 다양한 종류의 논리적 오류,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가치관의 혼돈 등을 철학적 병의 사례로 제시하고, 이러한 “철학적 병을 진단하고 진단에 따라 적절한 치료와 처방을 하는 철학의 새로운 분야를 ‘임상철학(clinical philosophy)’”이라고 부른다. 맹목적인 신념을 검토하여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은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