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경제가 약간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로 광물자원 개발과 채굴에 외국기업이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내막을 소상히 알 수 없으나 우선 불안감이 앞선다. 1990년, 소비에트러시아가 무너졌을 때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 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났었다. 구소련의 관료들이 매국노로 표변하여 외국의 범죄조직과 결탁, 나라를 거덜냈다. “한 사회의 토대를 무너뜨림에 있어 그 화폐가치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은밀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없다.” 이것은 케인즈의 경고다. 보이지 않는 경제의 파괴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백만 명에 한 사람도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그러나 구소련의 화폐가 망가져 가는 과정을 서방의 정보기관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그들이 파괴를 주도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증거가 없으니까. 그러나 이들이 일절 모르는 채 함구하고 방치했던 사연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러시아가 위협 세력으로 다시 일어날 수 없기를 바라는 서방세계가 그 해체를 묵과로써 방조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국의 발단은 1991년 1천4백억 루블을 단돈 78억 불로 바꾸려는 공작에서 비롯했다. 서방의
문명은 농촌에 대한 도시의 착취와 지배를 뜻한다. 시장과 행정조직, 군대의 본부가 돈과 폭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동서와 고금에 그 예외가 없다. 옛날 하(夏), 은(殷), 주(周)가 그러했고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선진 자본국들이 도시의 망을 이루어 제3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도시문명의 지구화에 다름 아니다. 도시문명에 대한 나의 반감은 나이로비, 뭄바이 등의 빈민굴이 도시문명의 야만성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도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은 인류의 큰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이집트 학자들의 수준이 놀랍게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과 공동 연구하는 이란 출신 동료는 이집트가 제어과학(system science) 분야에서 강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서열과 석차를 금과옥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메카인 MIT, 하버드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동안, 학문과 기술은 급속히 다극화의 길로 가고 있다. 정보혁명 때문에 일어나는 도농(都農) 간의 지각변동은 우리의 시각교정을 요구한다.역사학자 홉스봄은 지난 3백년의 세계를 산업혁명과 민주정치혁명이라는 이중 혁명의 과정으로서 큰 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앞서거니 뒤
‘카사노비스트’라는 사람들이 있다. 18세기 유럽을 종횡하며 수없이 많은 여성들을 행복(?!) 하게 했던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를 공부하는 학자들이다. 그는 초인적 여성편력의 기록을 원고지 3천6백 쪽에 달하는 자서전에 담았다. 어느 공상모험 소설도 무색케 하는 이 미완의 대하 자서전은, 당시 유럽의 사회상을 꾸밈없이 기록한 소중한 사료가 되어 그 전문 연구가가 나타나기에 이른 것이다. 몇 개의 이삭을 주어보면 자코모는 보통의 지식인이 아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 볼테르를 제네바로 찾아가 문학과 예술, 정치에 대하여 큰 논쟁을 벌인다. 볼테르는 그를 자신과 대등한 지성인으로서 대접했다고 썼는데 나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심오한 사상이 아니라 섬광처럼 번득이는 기지와 재치 있는 말재주가 판을 치던 세상에서, 천하의 딜레탕트 카사노바가 볼테르를 놀라게 했을 가능성은 크다.볼테르는 민중을 미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사노바는 반박하여, 이것은 민중더러 철학자가 되라는 것인데 철학자가 국가권력에 복종하기를 즐겨하겠는가 묻는다. 민중을 쇠사슬에 묶어 놓아야 행복할 수 있으므로 미신이 쓸모가 있다고 우긴
밖에 나가 사는 사람이 한국정치를 말하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다. 해외거주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도 나는 반대한다. 원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제일 큰 문제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고국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흔히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로 시작되는데 “이 지경”의 내막을 알 수 없다. 대체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는가 물으면 응답이 영 시원치 않다.참여정권이 처음 들어섰을 때 중도좌파 대통령이 성장보다 분배의 형평을 성급하게 추구해, 겨우 일어나는 경제를 중남미의 실패한 나라꼴로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퍼졌었다. 두산중공업의 노사분규 때 정부가 노조 편을 들었고, 화물연대 태업 때는 소자본가들 편을 들어 포퓰리즘의 두려움이 현실로 되어 나타났다고 엄살이 대단했다.그러나 그 후로 참여정부는 모든 노사분규로부터 공권력개입을 일체 자제하고, 친 기업 친자본의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지켜 성장을 추구했다. 자신을 지지한 노동자와 젊은이, 서민에게 등을 돌리고 정치적 자산을 다 써버린 노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 때문에 한국이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체감경기가 나쁘다고 아우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