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엉뚱한 데로 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점점 이상야릇해지고 있다. 신정아 사건은 이제 대한민국 전체 여론을 뒤흔드는 초대형 스캔들이 됐다. 문화일보는 급기야 만천하에 신정아의 누드를 공개했는데, 이유는 단 하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란다.
신정아가 ‘교수’였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의 학벌 제일주의를 질타할 때부터 조짐이 수상했다. 갑자기 전 언론이 한 목소리로 학계의 무능을 질타하고, 가짜 박사에 대한 자체 검증능력이 아예 없는 것처럼 집중 공격할 때도 미심쩍었다. 대학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학계가 그렇게 만만한 곳일 리 없다. 경찰이 나서서 검증 시스템을 도입한다느니 설쳐 봐도 막상 가짜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엮여지지 않자, 불똥은 곧 연예계로 튀었다.
연예계는 원래가 학력이나 학벌로 먹고 사는 동네가 아니기에 과연 가짜 학위가 많았다. 빅 스타들이 연일 학력 위조로 도마에 올랐다. 문화예술계와 연예계의 거물들이 결국 초라한, 자신의 진짜 학력을 고백하며 대중 앞에 사죄했다. 일부는 사법처리 대상이 되어 범법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이들 대부분은 새롭게 들통 났다기보다 주변에서는 이미 내막을 알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위조 학력’은 성공의 발판이 아니라 액세서리였다. 허영심에 거짓말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범죄자 취급은 분명 과장이었다.
초라한 학력 대신 그들에게는 화려한 경력이 있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그들은 분명 최고였고 ‘진짜’였다. 실력으로 오늘에 이른 것임을 대중도 뻔히 알고 있다. 신정아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언론은 연일 연예인 학력 파헤치기에 열을 올렸으나 어느 정도 지나자 더 이상 ‘대어’는 낚이지 않았다.
신정아 사건이 청와대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였다는 본질은 한참 후에야 드러났다. 실은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됐을 때부터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대충 짐작했을 터였다. 남의 다리만 긁다가 할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온 수사 방향은, ‘린다 김 사건’ 등을 떠올리게 하며 ‘한국형 지퍼게이트’ 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사건은 또 한 번 몸을 틀었다. 바로 사건 당사자의 ‘몸’을 보여준 게 문제였다.
전 국민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한 여자의 누드에 ‘연루’되고 네티즌 전체가 관음증 환자로 몰리고 있다. 사건 자체가 진화와 변신을 거듭하더니 정체 모르게 변질돼 간다. 당연하게도 여성계의 반발이 제일 거세다. 저널리즘의 선정성에 대한 질타도 예상대로다.
그러나 이 ‘당연함’ 속에서 사건의 본질은 또다시 희석되고 있다. 처음에는 연예계라는 동네북을 두드려대다가, 이제는 가장 맹렬한 벌통인 여성계를 건드렸다. 진실은 또 다시 엉뚱한 논쟁에 휘말려 저만치 밀려났다. 저마다 제가 속한 집단의 목소리를 이번 기회에 한번 높여보려고 아우성이다. ‘몸통’은 그 사이 꼬리를 감추고 세탁을 거듭해 곧 공기 중에 흩어질 듯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국민의 알 권리’는 늘 엉뚱한 곳에서만 지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