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남긴 비유 중에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다.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씨를 뿌리는 자의 자세에 대해서 교훈하는 것으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사역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보통 교회에서는 예수의 설명에 나오는 세 가지의 나쁜 경우, 곧 길가에, 돌밭에, 가시떨기에 씨가 떨어진 경우를 성도들의 나쁜 마음으로 풀이하고, 좋은 밭에 씨가 떨어져 30배, 60배, 1백 배의 결실을 맺은 경우를 성도들의 좋은 마음에 비유하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비유의 초점에서 크게 벗어나는 해석이다.
예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의 초점은 본문의 구조상 분명히 씨를 뿌리는 자, 곧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해나가는 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해나가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우선 사탄, 곧 악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고난과 박해도 있으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다른 욕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씨가 제대로 결실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씨를 계속 뿌려나가다가 보면 좋은 밭을 만나 30배, 60배, 1백 배 결실할 때도 있다.
아마 예수의 말씀대로 알아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예수의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악한 세력의 장난, 세상의 여러 환경, 구조의 문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연약함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믿음과 소망 중에 계속 해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의 가르침은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둠의 시간 속에서도 진리가 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정의가 솟아나며, 사랑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큰 영향력을 끼쳐왔다.
우리 역시 넓게 보면 각자의 인생 속에서 씨를 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의 꿈을 향해서 열심히 씨를 뿌리며, 교직원들 역시 참된 대학 교육의 실현과 더 나은 교육의 환경을 위해서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진리, 정의, 사랑의 나라를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이뤄나가겠다는 원대한 목적 가운데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 우리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 미미해 보이고, 의미가 없어 보일 때가 있다. 과연 얼마나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 조급해하며, 초조해하기도 한다. 이 때마다 예수의 비유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씨를 뿌리는 여러 몸짓들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