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 한 장만 읽으려고 했다가 어느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다는 점도 처음에는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지나면 오히려 그 관계를 따라가는 재미가 생긴다. 누가 누구와 손을 잡고, 언제 판세가 바뀌는지를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다.
특히 탁월한 글솜씨를 가진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는 문장이 잘 읽히고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처음 삼국지를 접하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적다.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읽다 보면 의외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사가 보인다. 결국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삼국지를 읽으면서 책 읽는 일이 재미있다는 경험을 해봤으면 한다. 꼭 거창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다거나 감동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한 권을 읽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경험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부터,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이 궁금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