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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1) - 줄곧 들어온 소리

  • 작성자 : 계명대신문사
  • 작성일 : 2018-06-04 10:52:45

●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 -  줄곧 들어온 소리

줄곧 들어온 소리 


성유경 (서울예술대학교•문예창작전공•3) 

 

유나가 일한다는 가게는 오래된 라멘 가게였다. 한 눈에 봐도 작고 초라한 가게여서, 정말 여기서 유나가 일하는 게 맞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착각한 걸지도 몰라.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유진 언니의 메시지와 가게의 간판을 번갈아 가며 읽어봤다. 히루요루. 유진 언니가 알려준 이름과 가게의 이름이 같았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가 아파서 앉을 곳이 없나 둘러봤지만 자리가 없었다. 두 개 뿐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 위에는 이미 중년의 남자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가게 외벽에 붙어 서서 얼른 내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날이 너무 더웠다.

길은 한적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정말 여기가 한국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지금껏 내가 가본 바닷가는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이 즐비한 곳뿐이었다. 바다는 유리가루를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드문드문 하얗게 반짝였다. 고개를 숙였다. 내 발끝을 경계로 그늘인 곳과 그늘이 아닌 곳이 나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늘 안이라고 해서 더 시원한 건 아니었다. 너무 더웠다. 덥고 힘들어서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할 즈음, 점원이 나를 불렀다. 점원은 문가 구석에 있는 빈 테이블을 가리키고는 바쁘게 부엌으로 사라졌다. 가게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작아보였다. 테이블은 네 개 뿐이었고, 그 마저도 두 명 이상은 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엌 바로 앞에 바bar로 된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뒤통수가 유난히 새까맣게 보였다. 조명이 좋지 못한듯했다. 자리에 앉아 누런 벽지에 걸린 메뉴를 천천히 읽어봤다.

주문을 하려고 점원을 불렀다. 조금 전에 나를 안내해준 남자가 와서 주문을 받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유나는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까 하고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그만뒀다. 유진 언니가 알려준 대로 여기에 왔지만 유나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언니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잘 지내냐고? 밥은 잘 챙겨 먹냐고? 어떤 말도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을 나가서 연락도 안 되던 애를 일 년 만에 찾아와서 뭐라고 말을 해. 자취방 보증금도 챙기지 않고 갑자기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애한테.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휴대폰을 꺼내 유나에게 보낸 메일을 확인해봤지만, 여전히 읽지 않은 채였다. 메일로 오늘 여기에 온다고 말해놨는데, 아직 읽지 않았으니 얼마나 더 기다려야 유나를 만날 수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점원이 내 앞에 라멘을 내려놨다. 노란 국물 위로 하얀 기름이 둥글게 떠 있었다.

라멘은 생긴 것과 다르게 맛이 좋았다. 기름진 면을 먹고 있자니 왠지 맥주가 먹고 싶어졌다. 맥주를 시킬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쳤다. 유나다. 유나는 어, 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살짝 벌렸다. 민주야. 놀란 내가 미처 그 부름에 대답하기도 전에 유나는 잠시만, 하고는 부엌으로 뛰어갔다. 유나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유나가 들어간 부엌 쪽을 잠시 보다 다시 몸을 바로 했다. 유나의 머리카락이 남자애처럼 짧아져 있어서, 순간 내가 사람을 착각한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살이 조금 더 빠진 것 같았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유나가 내 앞에 앉으며 물었다. 나는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네 생각나서 한 번 와봤어. 너한테 줄 것도 있고. 유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언니가 말한 거지? 젓가락에 묻은 기름이 테이블 위에 묻는 게 신경 쓰였다. 유나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봐서 좋다, 나 지금 알바 교대해야 해서 그런데, 마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줄래? 나는 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가 내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우리 집 약도야. 일 마치면 늦으니까, 집에서 보자.

가게를 나와 유나가 일러준 대로 모퉁이를 돌아 위로 쭉 걸어갔다.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동네가 조용했다. 서울로 가는 막차가 몇 시까지 있었지. 여차하면 유나네 집에서 자면 됐지만, 이럴 거면 맥주를 먹을 걸 싶었다. 길에는 개와 고양이가 많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횟집에서 한 여자가 고양이들에게 횟감을 던져주고 있었다. 물고기의 하얀 살을 주워 먹는 고양이들의 몸이 통통했다. 걷다가 큰 길에서 골목길 쪽으로 한 번 더 꺾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낡은 건물이 나왔다. 오래된 주택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담장이 낮은 그 집은 우리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과 어딘가 닮아 보였다.

우리가 살았던 그 집은 한 담장 안에서 一자형의 집 두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집이었다. 지대가 일정하지 않아 두 집의 높이가 조금씩 달랐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집에서는 내가, 조금 더 낮은 곳의 집에서는 유나가 살았다. 유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예뻤다. 유진 언니가 학교에 가고 우리와 자주 놀아주던 유민 오빠도 지쳐 있을 때면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다. 같은 마당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늦게까지 놀아도 괜찮았다. 우리는 마당에 자라있던 잡초를 뽑아 돌로 쿵쿵 찧으며 놀았다. 엄마나 이모가 없으면 수도꼭지를 틀고 물장난도 했다. 그렇게 둘이서 놀다 지쳐 마루에서 잠이 들면 엄마와 이모가 와서 우리를 깨우곤 했다. 잠에 겨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유나를 데리고 제 집으로 돌아가던 이모의 까만 뒤통수가 기억난다. 어린 나는 유나가 돌아가고도 한참동안 마루에 앉아 아무도 없는 마당을 바라봤다. 해가 져 검게 변한 마당과 우리가 갖고 놀던 장난감의 윤곽, 유나의 집에서 새어나온 노란 불빛이 수돗가에 고인 물에 어려 반짝이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좋아했다.

한참을 걷다 감색 외벽의 다세대 주택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유나가 산다는 집이었다. 일층 입구에 문패처럼 붙어있는 스티커의 색이 바래서 장미빌라 라는 글자를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계단을 올랐다. 사층 왼쪽 집이 유나네 집이었다. 유나는 우리가 같이 살았을 때 썼던 비밀번호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냄새가 났다. 약간 고릿하면서 익숙한 냄새.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신발장 옆에 가방을 내려두고 방을 둘러봤다. 원룸인데도 그렇게 좁지는 않았다. 집안에는 처음부터 이 집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가구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사람이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단출했다.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도 보이지 않아서, 유나가 여기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물기 하나 없는 싱크대 옆에 꽤 많은 양의 고지서가 쌓여 있는 게 보였다. 그럼 유나가 여기에 와서 물건을 거의 사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면 샀다가 버렸거나.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내가 아는 유나는 그런 애가 아니었다. 작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하나씩 사 모으는 게 취미인 애였는데. 나는 유나가 자신의 책상 위에 자랑스럽게 진열해놨던 조그만 화분과 인형 따위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매트리스에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며 유나가 오길 기다렸다. 해가 지고 밖에서 술 취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나는 오지 않았다. 나는 현관에 놔둔 가방을 가져와 칫솔을 꺼냈다. 칫솔을 들고 다니는 건 대학교를 다니면서 생긴 습관이었다. 대충 씻고 옷장에서 검정 티셔츠와 체육복 바지를 꺼내 입고는 다시 매트리스에 누웠다. 유나는 늦는 것 같았다. 졸음이 점점 밀려왔다. 유나가 오면 할 말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자다가 너무 더워서 깼다. 아침이었다. 눈에 붙은 눈곱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나는 없었다.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그새 일을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목이 말랐다. 베란다로 가서 냉장고를 열려는데, 그 위에 붙어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배고프면 가게로 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유나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물부터 찾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면서, 점심때쯤에 한 번 가볼까 하고 생각했다. 창밖에서 개가 짖었다.

가게는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바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부엌에는 어제의 그 남자 점원과 유나, 둘뿐이었다. 점원 혼자 음식을 만들고 있어서 다른 직원은 없는 건가 의아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나가 음식을 들고 왔다. 자, 이것도 먹어. 나는 유나가 건네준 걸 받으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타코와사비야. 나는 문어와 오이고추, 새싹이 섞인 그것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끈적했다. 근데 직원은 너랑 저 분이 다인가 봐? 유나는 내 시선을 따라 부엌 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를 쳐다봤다. 응, 원래 쟤 아버지께서 부엌일을 하셨는데 요즘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나랑 우진이 둘이서 하고 있어. 나는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물을 마셨다. 괜한 걸 물어봤다 싶었다. 타코와사비는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입안에 싸한 맛이 감돌았다. 유나는 맛있지, 하고 물으며 내가 좋아하는 거야, 라고 덧붙였다.

유나는 내 옆에 앉아서 음식이 입맛에 맞는지, 네가 좋아하는 식감은 아닐 텐데 괜찮은지 따위를 묻다가 손님이 들어오는 걸 보고 입구 쪽으로 갔다. 손님은 어제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나는 유나가 주문을 받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다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여기서 언니의 부탁을 꺼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먹어야지, 뭐. 유나는 많이 밝아진 것 같았다. 밝은 것 같은데, 전혀 밝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기억하는 유나를 떠올렸다. 이모부가 벗어놓은 회색 코트를 망토처럼 두르곤 나 어때, 하고 묻던 유나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 질리면 아무데나 옷을 내팽개쳐 놓곤 했지. 유민 오빠는 그런 유나와 가장 잘 어울려 주던 사람이었다. 유나와 네 살 터울의 오빠는 유나가 입으라는 옷을 군소리 없이 입어보이며 어때, 하고 웃곤 했다. 그게 제 몸보다 큰 등산복이나 유진 언니의 까만 교복 치마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유나는 오빠가 평소에 입을 수 없는 옷을 입을수록 더 좋아했다. 어색한 옷을 입혀놓고 세상에서 제일 잘 어울린다며 까르르 웃어댔다. 내가 옷을 잘 못 입는 건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일 수도 있겠다. 오빠는 언니의 옷을 입었다가 내 옷을 입었다가 이모부 옷을 입기도 했다. 오빠가 그런 장난에 어울려줬던 건,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알지만 그래도 나는 오빠가 선한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믿고 싶다.

점점 손님이 많아졌다. 유나는 손님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테이블을 정리하느라 나와 이야기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이따금 고개를 살짝 돌려 유나가 일하는 모습을 훔쳐봤다. 유진 언니가 보면 내심 섭섭해 할 모습이었다. 막내는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는 게 유진 언니의 바람이었다. 언니는 우리가 같은 대학교로 진학한 뒤로 나에게 종종 전화를 했다. 대개는 유나가 나오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였다. 언니는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어제 유나가 절벽에서 떨어졌어. 너도 알겠지만, 유나 피부가 약해서 말이야, 상처가 얼마나 크던지. 난 애가 피부도 안 좋으니까 세제 같은 건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요즘 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한다면서? 거기 고무장갑은 준다니? 오늘 낮에는 유나가 뱀에게 물렸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이제 낮잠은 자지도 못 하겠다니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내게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전화를 거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새벽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언니는 내게 자주 둔감하게 굴었다. 가끔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참았다. 언니는 예민해져 있었고, 힘들어 보였으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들. 내가 아는 건 고작 그런 게 전부였어.

맥주 한 잔은 금방이었다. 나는 유나에게 한 잔만 더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유나가 미안한 듯 멋쩍게 웃으며 괜찮겠냐고 물었다. 뭐가 괜찮겠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타코와사비가 나름 괜찮았다. 씹을 때마다 살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맥주는 아까보다 조금 더 시원했다. 라멘 국물을 안주 삼아 맥주를 먹고 있는데 그게 안쓰러웠는지 남자 점원이 내 앞에 오이무침을 갖다 줬다. 유나에게 들으셨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좀 아프셔서요. 오랜만에 친구 보러 오셨을 텐데, 얘기할 틈이 없어서 죄송하네요. 아, 저는 김우진이라고 합니다. 나는 김우진 씨의 동그란 코언저리를 보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유나네 집에서 자면 되니까 상관없어요, 휴학해서 시간도 많고. 김우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 대학생이시구나, 하고 말했다. 어쩜 저렇게 동그랗게 생겼을까. 나는 김우진이 유나가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을, 그 말을 하던 유나가 어떻게 웃었는지를, 그때 날씨가 어땠고 가게 형편이 어땠는지, 그래서 유나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에 대해서 두서없이 늘어놓는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유나는 이런 사람과 만나고 있구나. 잘 지내는구나, 하고.

유나가 잘 지내서 다행이었다. 오이무침은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풋풋한 향이 그대로 났다. 일 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 나는 만나던 애인과 헤어졌고 휴학을 했다. 언니는 조카를 낳았는데 애가 유진 언니를 똑 닮아서, 언니의 남편은 어디서 애를 잃어버리더라도 애는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나는 그 농담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언니는 질색을 했지만.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계산을 했다. 유나는 나를 잡지 않았다. 한 손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따 집에서 보자는 유나의 말에 손을 휘저어 보이곤 가게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노르스름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계란이라도 터트린 것 같네. 길을 걷다가 어제 본 그 횟집에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걸 봤다. 여자는 없었다. 가게 불이 꺼져 있어서 조금 으스스했다. 회라는 붉은 글자가 원래 이렇게 무섭게 생겼었나. 무심히 고양이들을 보며 어제 그 아이들인가, 하고 생각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유나네 집을 향해 걷다가 멈춰 섰다. 유나는 또 늦을 게 분명했고, 이대로 집에 가면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그건 싫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바닷가로 향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바다를 보고 가도 좋겠지. 나는 파란 바다를 따라 난 해안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모래사장이 나왔다. 작았다. 아무리 봐도 관광지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 사람이 없는 거구나, 하고 혼자 납득했다. 모래사장에는 사람 대신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중형견으로 보이는 누렁이가 새까만 코로 모래를 뒤졌다. 먹을 거라도 찾나. 나는 혹시나 싶어 내 주머니를 뒤졌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삼색 고양이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어느새 붉게 변한 하늘을 흘끗 올려다보고, 모래사장 쪽으로 내려갔다. 저녁인데도 더웠다. 취기가 올라 더 그랬다. 괜히 모래를 발로 툭툭 차면서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유나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돈을 건네줘야 할지. 유진 언니가 부탁해서 줬다고 하면 싫어하겠지. 싫지만 어쩔 거야? 혼자서 월세며 전기세며 생활비 따위를 다 감당하는 건 힘든 일이다. 유나는 받겠지. 싫어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건 내가 싫었다.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유나에게 돈을 건네줘야 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의아해졌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내뱉고 나니, 정말 유나의 어디가 예쁜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가 예쁘다고. 멋대로 집을 나간 애가 뭐가 예쁘다고. 유나가 집을 나간 지 삼 일째 되던 날, 나는 겁에 질려 언니에게 전화했었다. 언니, 유나 큰일 난 거면 어떡해? 무슨 일 생긴 거면 어떻게 해? 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그랬다. 언니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한 달이 꼬박 지난 뒤였다. 유나, 휴대폰 버렸나봐. 어디 지방에서 산대. 학교는 그만두겠다더라. 처음에는 언니가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유나의 짐을 유진 언니에게 보내고 투룸에서 원룸으로 옮기기까지 또 한 달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 살이 사 킬로그램 빠졌다. 학교에서 동기들이 나에게 다이어트라도 하냐고 물었다. 유나의 소식을 묻는 애는 없었다. 우리는 과가 달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불안했다. 유나는 지방에 있다 했고 모든 건 다 괜찮다 그랬는데 어째선지 자꾸만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잘 지내고 있었어. 다행이었다. 다행이지만, 예쁘지 않았다. 예쁘지 않았으면 했다. 자꾸 살이 빠지는 것 같은 유나가 걱정스러웠다. 머리가 아팠다. 속이 울렁거렸고,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유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돈만 줄 것이다. 돈만 주고 이 지루한 바닷가를 떠나버릴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모래를 뒤지던 누렁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누렁이는 왈, 하고 한 번 짖었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를 쭉 올라가다 보니 라멘가게가 나왔다. 가게 앞에는 유나가 있었다. 나는 멀리서 유나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담배를 피우는 건 처음 봤다. 놀랍지는 않았다. 나는 유나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돌아섰다. 모퉁이를 꺾었고 횟집을 지나 큰길로 갔다. 큰길에서 다시 골목길로 들어갔다. 골목길에서도 짠 내가 났다. 낮은 담장을 지나고 노란 꽃이 핀 집을 지나 유나네 집으로 갔다. 유나가 혼자 사는 집. 유나가 혼자 돈을 벌어 혼자 책임지는 집. 그것만은 온전하게 유나의 것이었다. 나는 유나가 돈을 받지 않으면 돈을 던져주고 나오겠다고 결심했다. 던질 수 없다면 유나의 집에 숨겨두겠다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가게에 맡겨두겠노라 다짐했다. 이것 역시 유나의 것이었다.

가로등 아래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음식물이 부패하는 냄새가 지독했다. 반투명한 쓰레기봉투 안으로 검고 붉은 음식물이 뒤엉켜 있는 게 보였다. 쓰레기와 구분 없이 같이 뒤섞여 있는 음식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물 같았다. 그런 게 서너 개 모여 이룬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가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쓰레기봉투 위에 들끓고 있는 벌레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날파리와 나방 같은 것들이 잔뜩 꼬여 있었다. 여름이어서 벌레가 유독 많은 것 같았다. 벌레들은 노란 빛 아래에서 더 선명하게 보였다. 징그러웠다. 징그러웠지만, 나와는 무관했다. 나는 그것들을 지나쳐 유나의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고 씻었다. 유나의 옷을 꺼내 입고 창문을 활짝 열어둔 뒤 매트리스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유나가 오기 전까지 조금만 자야지. 유나는 몇 시쯤에 올까.

민주야.

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눈을 떠서 보니 온 사방이 까맸다. 민주야, 정전인가 봐. 유나가 뭐라고 말하는 건지 곧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라고? 정전, 정전인 것 같다고. 나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유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휴대폰으로 유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왜 정전이야? 다른 집도 그래? 유나가 창밖을 보더니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싱크대 옆에 쌓인 고지서가 언뜻 보였다. 너 전기세는 냈어? 유나는 안 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유나에게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아니, 전기세를 안 낸다는 게 말이 돼? 왜 이렇게 밀린 건데? 유나가 나를 보며 슬쩍 웃었다. 예전에 전기세 같은 건 너가 다 내서, 자꾸 까먹게 되네. 미안해.

휴대폰에 손전등 어플을 깔아서 틀었다. 고지서들 속에서 밀린 전기세 고지서를 찾아내 입금한 다음에 유나에게 볼멘소리로 말했다. 너 이거 그냥 언니한테 부탁해봐. 언니는 네가 부탁하면 좋아할 걸. 유나는 내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웃는 것 같기도 했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유나가 언니에게 부탁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밀리지 않게 조심해. 내일은 전기 들어올 거야. 내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던 유나는 갑자기 아, 하고 고개를 번쩍 들더니 냉장고! 하고 소리쳤다.

우리는 불이 켜지지 않는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게 상하는 음식인지에 대해 의논했다. 계란이 상하는 음식인가? 내가 묻자 유나는 잘 모르겠지만 슈퍼에서 계란을 냉장고에 넣어 두지는 않으니 아마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럼 맛살은? 이건 시원한 곳에 놔두는 거 아냐?

응, 그건 상할 것 같다.

이건 뭐야, 치즈네. 상하려나?

글쎄, 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먹자.

너 여기 술도 있네.

응, 심심할까봐 사놨어, 먹을래?

유나의 냉장고는 근사했다. 우리는 냉장고에서 술과 술안주를 꺼내 바닥에 늘어놨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빗방울이 쇠창살에 부딪혀 타당타당 하는 소리를 냈다. 휴대폰 위에 소주병을 올려놨다. 소주병은 야광물질처럼 반짝였다. 유나가 초록색 빛을 보면서 말갛게 웃었다. 유나의 얼굴에도 초록색 빛이 어려 있었다. 나는 캔 맥주를 뜯어 홀짝이며 비가 오네, 하고 말했다. 유나도 그러게, 비네, 하고 중얼거렸다.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전기가 나갔으니 에어컨도 안 될 테고. 나는 맥주가 따뜻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미지근한 것 정도는 참을만했다. 우리는 별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늘어놨다. 내가 김우진 씨랑은 언제부터 사귄 거냐고 물으면 유나는 그때 그 애인이랑은 아직 사귀고 있느냐고 묻는 식이었다. 애인이랑은 헤어졌어. 유나가 슬라이드 치즈를 잘게 찢었다. 난 우진이랑 지난 겨울부터 만났어. 나는 유나와 김우진이 함께 보냈을 계절을 생각해봤다. 겨울날의 라멘가게가 선뜻 상상되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캔을 하나씩 비워갔다. 낮에 먹은 술 때문인지 술기운이 빨리 올랐다. 유나도 조금 취한 것 같았다. 나는 유나가 더 취하기 전에 언니가 준 돈을 건네줬다. 언니가 준 거야, 받아. 유나는 그게 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책상 위에 그걸 올려놨다. 슬라이드 치즈는 더 찢어질 수 없을 정도로 뜯겨 있었다. 유나는 자신이 찢은 치즈를 하나씩 입에 집어넣고 오래오래 녹여 먹었다. 그 작은 걸 그렇게 오래 먹을 수가 있나. 맛이 나나. 나는 궁금했지만 묻는 대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근데, 여기에 있으면서 개소리 못 들었어?

유나가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 개소리는 어떤 개소리.

맥주 캔을 새로 뜯으며 되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요전부터 자꾸 개가 짖는데 소리가 좀 이상해서, 이상하게 울잖아 개가 짖는 거랑 우는 건 다르니까, 아는데, 그게 잘 모르겠어서

유나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취한 것 같았다. 저러다 자겠지. 나는 유나가 혼자 계속 중얼거리게 내버려뒀다. 유나가 고양이를 키우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길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오긴 했나 보네,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유나네 집에서 고양이 사료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제 맡았던 냄새가 그 냄새였나. 나는 동물 사료 특유의 비린 냄새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맛살 껍데기를 한쪽으로 쓸어 모았다. 유나에게 언니 딸은 봤냐고 물어봤다. 유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언니랑 닮았다며, 하고 말했다. 응, 언니랑 닮았더라. 유나가 손톱으로 치즈를 꾹꾹 눌렀다. 그럼 오빠랑도 닮았겠네. 나는 언니의 딸을 떠올려 봤다. 언니 딸이 오빠를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빠랑 닮은 걸로 치자면 유나가 훨씬 더 닮은 것 같았다. 유민 오빠의 여자 버전이 유나잖아. 유나가 조금 더 차분해지면 그게 유민 오빠고. 유나는 다시 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유나의 목소리가 오빠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오빠의 목소리.

목소리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아. 내가 기억하는 건 그 목소리의 느낌뿐이다. 웃는 듯 살짝 흔들리던 느낌이 생각난다. 목소리가 유난히 작아서 오빠의 말을 들으려면 하던 걸 멈추고 오빠를 봐야 했던 것도. 오빠는 목소리가 작은 게 싫다 그랬지만 나는 싫지 않았다. 오빠가 웃을 때 접히던 눈, 눈가에 생기던 미세한 떨림 같은 것들. 나는 오빠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그런 것들이 있었다.

우리는 계속 술을 마셨다. 유나는 술을 먹으면서 싫다는 말을 종종 했다. 술이 거의 다 떨어져서 휴대폰 위에 올려뒀던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가, 눈을 감았다. 빛 때문에 눈이 아팠다. 눈꺼풀 안에서 하얀 빛이 점점이 흩어져 자글거렸다. 눈을 뜨니 유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게 보였다. 유나야. 유나가 한쪽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눈 아파.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유나의 이마는 잔뜩 찡그려져 주름이 져 있었다. 희었다. 예뻤다. 유나는 담배를 피우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유나가 나에게 손짓했다. 같이 가자.

유나를 따라 일층으로 내려갔다. 비는 멎어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유나가 내게 담배 한 개비를 줬다.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 없었지만 유나가 준 담배를 순순히 받았다. 유나는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곤 내게 라이터를 건네줬다. 어설프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유나가 담배를 피우는 걸 지켜봤다. 유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안 피워도 돼. 피워본 적 없잖아. 그냥 들고만 있어. 나는 그래, 하고 말하면서 가로등 기둥 위에 담뱃불을 지져 껐다. 불을 들고 있기는 싫었다. 다리가 아파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음식물 냄새가 지독했다. 비가 와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지난여름에. 유나가 말했다.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담배 끝을 비볐다. 갈색 가루가 뭉개지며 떨어져 나왔다. 그러니까 아까 네 휴대폰 빛 때문에 눈이 지글거렸는데, 그거 지난여름 때랑 비슷했어. 지글지글. 나는 유나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나는 그때 자글자글 거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유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유나의 얼굴에 음영이 이상하게 져있었다.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유나에게 건네줬던 돈 이야기를 다시 했다.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 돈 전에 살던 자취방 보증금이야. 작년에 언니에게 줬는데 언니가 요전에 다시 나한테 주더라, 너 전해주라고. 유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맞은편 가로등 아래에는 노란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가 우리를 보며 울었다. 치즈라도 가지고 나올 걸. 유나가 아쉬운 듯 말했다. 고양이는 우리를 보며 몇 번 더 울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골목길로 갔다. 유나가 문득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개소리 안 들리지? 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유나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요즘 소리가 안 들려. 그애, 살아 있을까.

유나는 지난여름에 손끝이 자꾸 지글거렸다고 말했다.

손끝이 지글거렸는데 그게 꼭 벌레 같았어.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내 손을 봤는데 손바닥과 손가락에 하얀 점 같은 게 있는 거야. 하나였으면 무시했을 텐데 여러 개였어. 그래서 이게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그냥 내 피부. 그냥 내 피부더라. 그래도 무서워서 병원에 갔는데 피부가 얇아서 그런 거래. 혈관이 지나가는 곳 사이사이로 보이는 거라고 했어.

유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다시 바닥에 비볐다. 담배가 이상하게 구겨졌다. 유나가 새 담배를 꺼내 내게 줬다. 자. 나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생각보다 약하지 않았다. 오빠도 담배를 피워 봤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피워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몸이 약한 오빠에게 담배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입술 사이로 담배를 무는 거, 나쁘지 않은데. 유나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했다. 불을 붙이며 유나의 말을 곱씹었다. 오빠를 생각했다. 숨이 막혔다.

담배를 한 모금 마셨다가 내뱉으면서, 내 숨도 같이 뱉어냈다. 토하듯이 뱉어냈다. 유나와 내가 뱉어낸 뿌연 연기가 서로 뒤섞였다. 자꾸 토하는 것처럼 뱉다보니 정말 토가 하고 싶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가로등 아래에서 헛구역질을 하면서, 유나에게 너는 어떻게 이런 걸 피워, 하고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유나는 내 등을 탁, 탁, 두들기며 딴소리를 했다. 묻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나 자꾸 기억이 나. 그래서 나왔어. 김민주, 너랑 있을 수가 없어. 유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랑 있을 수가 없다고. 언니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그냥 다 싫다고 그랬다.

나도 그랬다. 나도 다 싫었다. 나도 자꾸 문득 문득 생각이 났다. 티브이에서 사고 소식이 흘러나올 때마다, 휴대폰을 보다 지진이 났다는 얘기를 볼 때마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어디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집을 나가는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집을 나가는 건 아니지. 그렇게 연락도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나는 유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유진 언니가 내게 전화해서 늘어놨던 악몽들에 대해서. 내가 왜 유진 언니의 전화를 싫어했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내 등을 두들기는 유나를 밀어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속이 아팠다. 아팠지만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감했다. 나는 가로등 아래에서, 쓰레기 봉지 위에서 들끓는 벌레가 보기 싫어 몸을 돌렸다. 까만 골목길에서 무언가가 자글자글, 걸어왔다. 아니 지글지글인가. 모르겠다. 개, 아니 고양이 같은 그게 울었다. 아니, 고양이가 아니라 비둘기인 것 같기도 했다.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있었고 그게 울었다. 울듯이 짖고 짖듯이 울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

 

또 낮이 왔다.

유나는 없었다. 나는 내가 입었던 유나의 옷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이왕 하는 김에 유나가 세탁바구니에 넣어둔 옷들도 같이 집어넣었다. 하얀 옷만 빼고. 세탁기를 돌린 다음에 옷을 갈아입었다. 가방을 싸면서 혹시 유나가 어제 내가 준 돈을 다시 집어넣진 않았나 살펴봤다.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종이에 휴대폰 좀 사, 하고 적은 뒤 냉장고 위에 붙였다. 창밖을 봤다. 하늘이 이상했다. 구름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선가 개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 멀리 노란 꽃이 핀 집에서 하얀 개 한 마리가 보였다. 개가 나를 보며 개소리를 냈다.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라멘 가게를 지나갔다. 가게 앞에는 할아버지 한 분과 손자로 보이는 아이 한 명이 빨간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유나는 일을 하고 있겠지. 인사를 할까, 하고 잠시 망설였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바쁠 것 같았다. 날이 더웠다. 나는 다음부터는 썬크림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

고속버스는 한 시간 뒤에 출발한다고 했다. 표를 사고 주위를 둘러봤다. 밖에 나가서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류장 건물 안에는 매표소와 매점 밖에 없었다. 사람이 앉을 자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냄새가 났다. 나이 든 사람의 살 냄새 같은 게. 안이나 밖이나 더운 건 마찬가지니 차라리 나가서 기다리자 싶었다. 밖으로 나와서 그늘 밑에 쪼그려 앉았다. 피곤했다.

건물 옆에는 산으로 가는 길목이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쪽을 봤다가 섬뜩해져 고개를 돌렸다. 길목 초입에 난 잔디가 이상했다. 지나치게 길고 뾰족했다. 연둣빛 풀은 위로 꼿꼿하게 뻗어있었고 그림자는 일직선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날카로워보였다. 그 위에 사람이 앉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버스는 출발 이십 분 전에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유진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유나한테 돈 잘 건네줬어. 나는 전송 완료라는 글자가 뜬 휴대폰을 내려다보다 가방에 집어넣었다. 언니에게서 답이 오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했다. 갓난애를 키우는 건 고된 일이니까. 언니는 요즘도 악몽을 꾼다 했지만 내게 그 내용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유나가 다쳤다거나 칼에 찔렸다는 과거형의 말을 듣고 있으면, 유나가 정말 무사한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으니까. 언니는 꿈을 이야기할 때 그 일이 정말 일어난 것처럼 말했다. 유나가 절벽에서 떨어졌어. 유나가 뱀에게 물렸어. 유나가 차에 치였어. 유나가 자살했어. 유나가, 유나가, 유나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로 유나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뱀에게 물리고 차에 치여 끝내 자살해버릴까 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유나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디선가 죽어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의자를 뒤로 넘기고 몸을 기댔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커튼을 쳤지만 다른 자리의 창으로 들어오는 빛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눈을 감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타지 않는 걸까. 지나치게 따갑고 뜨거웠다. 나는 기사님이 얼른 버스에 오르길, 버스에 올라 에어컨을 틀어주길 바랐다. 눈을 꼭 감고 있으니 어젯밤에 유나가 내 옆에 누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일은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살았던 집 바로 옆에는 내리막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야만 슈퍼며 식당 같은 가게들이 나왔다. 경사가 꽤 있어서 엄마와 이모는 우리 혼자서는 그쪽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유진 언니가 자전거를 가져온 건 부모님들이 우리가 그 길을 가도 참견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세 발 자전거는 언뜻 봐도 오래되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새 장난감이 생긴 게 기뻐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당에서 서로 번갈아 가며 자전거를 밀어주며 놀았다. 자전거 바퀴 하나는 밀릴 때마다 드르륵 거리며 혼자 다른 쪽으로 돌아가곤 했다. 한참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 순간 마당에서만 놀아야 하는 게 지겨워졌다. 우리는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밖에 나가서 타볼래?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유민 오빠도 함께였다. 오빠는 나와 유나가 자전거를 타고 길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지는 걸 길 위에서 지켜봤다. 한참 그렇게 놀다 보니 오빠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셋이서 같이 놀다 보면 항상 그렇게 되곤 했다. 유나가 하는 걸 내가 했고 내가 하는 걸 오빠가 하는 식으로 나와 유나와 오빠는 우리가 됐다.

오빠는 자전거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오빠가 두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눈썰매를 타는 것 같아. 오빠는 눈썰매를 타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길가에 나있는 빨갛고 작은 열매를 따 서로에게 던졌다. 눈뭉치처럼 던졌다. 나는 아무 데서나 자라나 있는 잡초를 뜯어 뿌렸고 그건 눈송이가 됐다. 오빠 다음으로 유나가 또 자전거를 탔다. 우리는 유나가 멀리 갈 수 있게 자전거를 밀어줬다. 이제 그건 눈썰매였다. 재밌었다. 우리는 척 하는 걸 잘 했다. 오빠가 다시 자전거에 올랐고, 우리는 신이 나서 자전거를 밀었다. 자전거는 아래로 밀려나갔다.

다행히 오빠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전화를 받고 집에 온 이모부가 오빠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고 엄마는 자전거를 내다 버렸다. 다음 날 언니는 방과 후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이모는 괜찮다고 말했다. 오빠도 그랬다. 유나가 엉엉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너무 많이 사과해서 사실은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공기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좁은 싱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서로 바싹 붙어 누워 검은 허공을 바라봤다. 유나가 말했다. 그때 그 일 기억해? 유나는 내 대답을 이미 들었다는 듯 계속 말했다. 나도 그때 내 손 끝에 닿았던 플라스틱이 아직 기억나.

아니. 유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하지 않았다. 잊었다. 잊는 방식으로 기억했다. 오빠는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했다. 나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전거를 민 건 우리가 맞았다. 그건 우리였고 앞으로 밀려나간 건 오빠였다. 무서웠다. 오빠는 다쳤고, 뒤에서 민 건 나였으니까. 오빠는 몇 주 뒤에 우리를 보며 작은 흉을 제외하면 이전과 똑같이 멀쩡하다고 웃어 보였는데 나는 어째선지 멀쩡해지지 않았다. 멀쩡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잊었다.

그게 전부다.

유나는 내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벽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를 찾아 몸을 돌렸다. 벽에 가까이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았다.

 

기사님이 에어컨을 틀어줬다. 나와 기사님 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가 움직인다는 게 이상했다. 반대편 창 너머로 사라지는 나무와 풀을 오래 바라봤다. 고개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눈앞으로 자꾸 새로운 나무와 풀이 지나갔지만 대부분은 동일한 종이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그리고 그 너머 펼쳐져 있는 논 사이사이로 그림자가 들어차 있었다. 잎과 풀의 모양을 그대로 닮아 검게 드리워진 그것들이 낯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창에도 커튼을 칠까 고민했으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버스에 있는 모든 창에 커튼을 칠 수는 없었다. 목이 조금 말랐다.

오늘 낮에 들었던 개소리를 유나에게 말해야 할까. 휴대폰을 꺼내 메일함을 열어봤다. 그전에 보냈던 메일도 아직 읽지 않았는데 유나가 새 메일을 읽어줄까. 나는 개소리를 들었다고 썼다가, 지웠다. 소리를 듣긴 했으니 아직 살아있는 건 맞았지만, 개가 괜찮은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데 소리를 들었으니 걱정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유나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버스가 다리를 건너며 조금 덜컹였다. 나는 멀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빛이 몰려들고 있었다.




●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 - 수상소감

“반투명한 무기질, 그런 것이 되고 싶다.”

싫어하는 게 많다.

나는 싫어하는 것을 계속 싫어할 것이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고통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한 약속, 맹세는 잊지 않았다. 물론 이런 맹세는 아무런 소용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우리에겐 힘이 없으니까. 그래서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주춧돌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다. 버팀목이 될 생각도 없다. 나는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저 버티기로, 내가 쥘 수 있는 칼은 절대 놓지 않기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은 쓴지 꽤 오래된 소설이다.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슬펐고, 아주 오랫동안 슬퍼했다는 것만이 생각난다. 곧게 자라는 풀은 여전히 무섭다. 무서운 동시에 슬픈 애정이 있어서 아직 그 곁을 떠나지는 못했다. 우리 아주 곧게 자라지는 말자. 얇은 커튼 너머에서 기다리자. 반투명한 무기질, 그런 것이 되고 싶다.

이렇게 누군가를 호명하는 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불러본다. 나를 지지해주는 부모님과 동생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나의 이웃으로 바로 옆방에서 날 지켜봐 줬던 요너들에게는 사랑을, 릴리 슈슈의 들판을 보여주었던 셩언니에게도 큰 사랑을 보낸다. 석류와 이빨에 대한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늘 나와 함께하는 지이에게는 뽀아뽀아 책이라는 말로 대신하겠다. 우리 부디 오래 아프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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