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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화상 작품보기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2) - 드리프터

  • 작성자 : 계명대신문사
  • 작성일 : 2018-06-04 10:56:35

●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 - 드리프터

드리프터 


정지혜 (홍익대학교•게임그래픽디자인전공•3) 

 

하늘은 파르스름한 정맥처럼 조금씩 펄떡였다. 아직 집을 나서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학교까지는 버스와 기차를 타고도 3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1교시가 있는 9시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새벽 5시에는 집을 나와야 한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기차가 앞 기차와의 선로 간격 유지를 위해 잠시 정차하는 시간, 정비되지 않아서 울퉁불퉁한 오르막길을 올라 강의실로 향하는 시간은 그 3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 대비해 물과 라면을 평소보다 많이 준비해 두듯이, 시간을 넉넉히 포개서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꺼내 쓸 수 있도록.

 

“벌써 나가니?......”

옷가지가 가득 든 캐리어 뚜껑을 덮는 소리에 엄마가 깨어났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일찍 일어났다. 매일 아침 8시까지 어린이집을 나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관 전등의 누리끼리한 빛이 스며든 엄마의 얼굴은 더욱 파리해 보였다.

 

“응. m 버스 타고 갈 거야.”

“이번 주에도 올 거니?......”

“......”

“기숙사 애들이랑도 좀 친해져야지......언제까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거야.”

“......갔다 올게.”

코트와 캐리어를 몸에 대충 걸치고 현관을 지나쳐 집 밖으로 나갔다. 삐리릭 하고 울리는 현관문 잠금장치 소리가 차갑게 손끝을 파고들었다. 문 안쪽에서 엄마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왜, 너는 왜, 라며 염불하듯 엄마의 말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나는 현관문을 닫아 버렸다.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엄마가 주저앉는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집에서 3시간 이상 거리에 떨어진 학교에 다니면서, 그 학교 부지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산다. 1층에는 식당이 있고, 지하에는 24시 편의점도 있어 기숙사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오후까지만 기숙사에 있고 주말마다 칼같이 집에 돌아왔다.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니면서,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치고는 이례적이었다. 내가 매주 집에 돌아오기로 한 건 기숙사 시설이 불편해서도, 집이 그리워서도 아니었다. 나는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와의 접점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처음 기숙사 방을 배정받았을 때의 일을 기억한다. 네 명이 거주하는 4인실 방은, 나보다 두 학년 위의 선배가 한 명, 한 학년 어린 후배가 두 명 들어와 있었다. 후배 중 한 명은 재수를 해서 나와 같은 연배였다. 나는 동갑인 후배에게 말을 놓자고 먼저 제안했고, 우리는 꽤 첫  인상을 그럭저럭 잘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숙사 생활은 지진이 난 식료품점 찬장처럼 불안한 흔들림을 보였다. 두 학년 위 선배는 졸업 준비 때문에 바빠서 기숙사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심지어는 외박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동갑인 친구는 재수까지 해서 들어온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계속해서 반수 얘기를 꺼냈다. 남은 건 나머지 한 명, 한 학년 후배뿐이었다. 그 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수가 적고, 나와는 영 맞지 않았다. 상대방이 먼저 진득하게 말을 붙여 주어야 비로소 거만하게 말을 꺼내는 성격.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그 애가 이 말을 듣는다면 상당히 불쾌해할지도 모르지만) 나와 그 애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걸어 주기만을 바랐고, 서로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둘 사이의 관계는 어색하게 고여 침전하기만을 반복했다. 이렇게 고인 관계에서 썩은 악취가 풍기고 파리 떼와 장구벌레가 모여드는 건 조금 이후의 이야기다.

 

나와 동갑의 친구가 괜찮은 관계를 맺게 된 것처럼, 그 후배와 동갑의 친구 역시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둘은 한 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면서 서슴없이 지냈다. 마찬가지로 한 살 위이고 겨우 한 학년 차이가 날 뿐인 나와는 천지 차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갑인 친구가 더는 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겠다며 또다시 재수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층층이 쌓아 놓은 카드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후배는 동갑인 친구가 그 말을 하고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 애에게 붙어 칭얼거렸다. 가지 말라며, 너 없으면 나 누구랑 노냐며. 작고 소곤거리는 말투였지만 노골적으로 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렇게 동갑인 친구가 떠나는 날이 되었고, 그 애가 방을 나설 때 나는 일부러 방에 남아 있지 않고 학교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 애와 후배가 벌이는 눈물의 이별식 따위를 보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먹었던 걸 전부 게워내게 될지도 몰랐다.

 

동갑인 친구가 학교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숙사엔 새 학생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한 학년 아래인 후배였지만, 동갑이 아니라 한 살 아래인 애였다. 동갑인 친구가 떠나고 부정이라도 탈 듯 내 쪽은 전혀 쳐다보지 않던 후배는, 자신과 나이가 똑같은 친구가 들어오자 언제 누구랑 헤어지기라도 했다는 듯 생긋생긋 웃으며 그 애를 맞이했다. 나는 새로 들어온 애와 친해지기 위해 시도했다. 처음에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으나, 어느새 인가부터 내 말에 대꾸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내가 있을 땐 방 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 끙끙거리고 있었을 때쯤, 나는 기숙사 방으로 들어오려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경박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새로 들어온 후배와 원래 있던 후배가 평소에는 전혀 들을 수 없는 텐션 높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나였다. 내가 얼마나 말 안 하고 음침한 성격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느니, 같이 있으면 숨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해서 미칠 것 같다느니 하는 찌꺼기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기숙사로 들어가려던 발을 돌려서 기숙사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저 대화라는 것이 끝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내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건 뒤에서 내 욕을 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말들이, 반은 진실이었다는 틀림없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은? 그 애는 자기 또한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숨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컴퓨터만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생선 대가리 쳐 내듯 전혀 꺼내지 않았다. 나는 기숙사 안의 둘이 덤프트럭에 뭉개져 내장과 뼈가 완전히 부르트고 박살 나기를 바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페에 앉아 3500원짜리 민트초코라테를 시켜놓고 2시간을 허비하는 것뿐이었다.

 

엄마는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단지 내가 기숙사 친구들과 썩 잘 지내지는 못한다는 것, 그 정도였다. 말을 꺼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덤프트럭뿐이었다. 아주 크고 흉악한 덤프트럭.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한 다음 또다시 택시를 타고 기숙사 앞에 내렸다. 강의실로 가기 전에 무거운 캐리어를 방에 두고 갈 예정이었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간 기숙사 안엔 역시나 선배는 없고 후배 둘만 남아 게걸스럽게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캐리어를 두고 재빨리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두 사람이 깨지 않기 위한 배려는 아니었다. 자는 동안의 둘은 이미 죽은 시체 같아서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잠에서 깨 눅눅한 신음 소리를 흘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둘은 내게 여명의 좀비와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시멘트가 듬성듬성 발라진 언덕을 올라 도착한 강의실에선 출석 체크가 진행 중이었다. 다행히도 내 이름이 불리기 전 차례여서 나는 출석 체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려 했다. 두 번째 줄 세 번째 자리에 가방과 코트를 걸고 털썩 주저앉아 컴퓨터를 켰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고개를 숙이자 우우웅 하는 부팅 음과 함께 이질적으로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두 명의 애들이 내가 앉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아 맞다. 그랬었지. 나는 머리에 사과를 맞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처럼 무릎을 탁 쳤다. 뉴턴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잊고 있었다가 다시 떠올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숙사에서만 혼자 지내는 게 아니었다. 나는 같은 전공 수업을 듣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혼자였다.

 

한때는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서 실없는 농담을 하고 점심엔 교내식당에 내려가 함께 밥을 먹었었다.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겨우 1년 전 1학년 때였다. 새 학기가 시작해 모두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같은 전공을 듣는다는 건 관심사의 일치와도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은 전혀 가지 않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여했었고, 그 전에 미리 입학할 신입생들끼리 모여서 노는 자리까지도 빼먹지 않을 정도로 관계 만들기에 열성적이었다. 나의 부단한 노력 끝에 나에게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몇 명이 생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있었다던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들은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따돌렸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 가방을 싸고 있는 나를 의식하듯이 재빨리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한두 번이었다면 실수이겠거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나를 작당하고 떼어 놓으려는 듯 동작은 점점 빨라졌다. 기어코 따라붙어 그 애들과 함께한 식사는 참을 수 없는 어색함과 불쾌함만이 감돌았다. 내 말에 엉거주춤 뱉는 대답 외에 그 애들은 말을 꺼내지 않고 입속으로 음식물을 씹어 삼켰다. 마치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눈치 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친구들을 쫓아 다니지 않았다. ‘까짓게 감히 날 따돌려? 나도 너네 필요 없어’라는 주제 모르는 오만함이 한몫했다. 어쩌면 그 애들이 나와 같이 다니고 싶어 하지 않은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못생긴 주제에 화장도 하지 않고 다니는 내 얼굴짝이, 드럼통에 자갈을 넣고 굴리는 듯 덜그럭거리는 내 목소리가, 먼저 말을 걸 생각도 하지 않고 상대방이 말을 걸어 주길 바라는 혐오스러운 성격이 그 이유에 포함되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알 길이 없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명언으로 보아, 내가 예상하는 후보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리라.

 

내 옆에 앉았던 두 명의 자리 밑 컴퓨터를 켜 보았다. 둘 다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 둘은 자리에 문제가 있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어서 떠났음이 분명해졌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호를 가지고 있음이 확실해지면 나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아니면 전혀 상관없어하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의 공포 속에서 벌벌 떨면서 망상에 잠식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 양옆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누구도 내가 옆에 앉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3시간 동안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업이 끝났다. 12시가 가까워지는 시계에 맞춰 배가 고파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나는 강의실이 있는 건물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이제 막 수업이 끝나고 끼니를 해결하러 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자동 식권 발매기 앞으로 가 보니 2800원짜리 우동과 3100원짜리 한식, 3800원짜리 등심 돈까스를 팔고 있었다. 하나같이 변함없고 추레한 메뉴들이었다. 나는 우동을 하나 고르고 체크카드를 집어넣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서 구매 내역이 문자로 날아왔다. 아마도 이 문자는 3시간이 넘는 거리에 떨어진 은행에 있는 아빠에게도 갈 것이다. 아빠는 엄마와 달리 내가 혼자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관심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혼자 먹을 음식값 만 지불하면, 아빠는 친구들 것도 좀 사주기도 하라고 나무랐다. 설령 내게 친구가 있다고 했을지언정, 나는 그들에게 밥 따위는 사주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그렇게 해서 쌓아 올린 호감은 상대방이 가진 재물을 향해 뻗어 있을 뿐, 상대방의 본질 따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것이 실제 경험으로부터 우러난 교훈이라는 씁쓸한 사실에 식욕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플라스틱 쟁반에 받아 온 싸구려 우동에선 플라스틱 맛이 났다. 정말 한결같은 맛이었다. 꽤 넓은 식당 내부엔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건 나와 몇 명의 남자들뿐이었다. 햇빛이 드는 창가 쪽 자리엔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남녀들이 앉아 있었고, 식당 구석 식수대 근처에는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별자리의 별들처럼 저만치 간격을 두고 앉아 꾸역꾸역 밥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 먹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생겨난 습관이었다. 너무 빨리 먹어서 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세상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찬 식당 안에서 혼자 계속 밥을 먹으면 그보다 더 심한 소화불량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전공 수업이 끝난 후 내 시간표는 텅텅 비어 있었다. 12시 이후로는 딱히 할 것도, 만날 사람도 없어 기숙사로 돌아가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지만, 기숙사에 있는 후배 중 한 명은 오늘 공강이기 때문에 기숙사로 돌아가느니 밖에서 노숙하는 게 나을 터였다. 나는 건물 2층의 휴게실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저녁 식사를 하는 5시까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다. 다행히 노트북과 책을 가져왔고, 휴게실은 콘센트도 갖춰져 있어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을 접속하며 하릴없이 꼼지락거리기도 잘 읽지 않는 책을 꺼내 몇 페이지 들춰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휴게실 안은 식당처럼 많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그 사람들은 실없이 떠들거나, 노트북을 앞에 두고 회의를 하거나 했다. 이 중에서 아무 이유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저기요. 여기 자리 좀 앉을 수 있을까요?”

3시간 정도 지났을까,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휴게실 안에 놓인 테이블은 1인용이 아니라 커다랗고 길쭉한 다인용이어서 혼자서 그 테이블을 다 쓰고 있으면 자리는 낭비되면서 다른 사람은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오로지 남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였다.

 

나는 우물쭈물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의 일행들이 자리에 앉아 짐을 폈다. 

그 사람들은 내 주위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노트북과 프린트 따위를 테이블에 늘여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서 뭘 어쩌니, 인터페이스를 좀 더 간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도저히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그 사람들이 온 지 5분 만에 가방을 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를 떠나자 그 사람들은 자리를 넉넉하게 벌리고 더욱 신나게 떠들었다. 내게 자리를 내어 달라고 말한 사람은 내게 악의 같은 건 품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걸 원하지 않아 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이었다. 대체 누가 알지도 못하고 딱 봐도 시간이나 흘려보내고 있는 사람 옆에 앉고 싶겠는가. 더구나 그 사람은 일행과 함께였다. 사람은 머릿수가 많아질수록 이상한 것, 일반적이지 않은 것과의 접촉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기분 좋은 사실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건 그 어떤 모욕보다도 지독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곪아 진물이 흐르게 한다. 내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썩어 문드러졌지만, 아직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싹이 난 감자를 먹은 듯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학교를 서성거렸다. 학교 안엔 십 년 전 조형대학 선배들이 만든 기괴한 조각상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미술로 유명한 대학이라 해도 너무 많은 수였다. 벚꽃이 피지 않은 학교엔 미세먼지와 숲에서 불어오는 송홧가루 섞인 바람만 불어왔다. 바람은 따갑게 눈두덩이 밑으로 침투했고, 머리카락에 누런 먼지가 달라붙게 했다. 회색 캐시미어 코트엔 시반 같은 얼룩이 생겼다. 나는 도저히 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저녁 먹는 걸 포기하고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도서관은 학교 구석 언덕 쪽에 위치해 사람이 얼마 없고 조용했다. 도서관에서라면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교 안의 장소 중에서 도서관을 가장 좋아했다. 보리차 같은 책 냄새도, 책 사이사이에서 나오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책갈피도, 심지어는 도서관 바닥을 쏜살같이 기어 다니는 돈벌레마저도 나에게는 안식처였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 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이 나를 알아본 듯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도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내 얼굴이 눈에 익은 모양이었다. 나는 소설과 예술 도서가 있는 왼쪽으로 들어갔다. 감옥의 창살처럼 좁은 간격으로 놓은 책장들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그 책장들 덕분에 도서관에선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단지 짜증 나는 점 이 하나 있다면 내가 책을 고르려고 하는 책장 앞에서 한나절이 넘도록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뿐이었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게 민폐일 뿐만 아니라, 타인이 기다리는 동안 뭘 할지 난감하게 만드는 불쾌한 경험을 겪게 한다. 다행히도 오늘의 도서관은 텅 비어서 미색의 생활 소음만이 가라앉아 있었다. 

 

일본 소설 코너를 둘러보던 중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유명한 작품 ‘인간 실격’을 발견했다. 제목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읽어 본 적은 없는 책이었다. 우울하고 외톨이인 인간상을 그린 작품이라 나는 읽으면서 위로가 될까 하고 그 책을 꺼내 펼쳐 보았다. 하지만 주인공 요조는 우울하고 자기 혐오가 심하다는 것 외에는 나와 공통점이 없었다. 그럭저럭 훌륭한 외모에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여자들이 등에처럼 달라붙는데도. 요조는 시종일관 축 처진 태도로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지 징징거렸다. 나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소설의 내용이 내 기대와 달랐기 때문인지 완전히 실망해서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책을 베게 삼아 엎드려서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문 닫을 시간 됐어요. 일어나세요.”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잡고 흔드는 감촉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7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나는 책을 책장에 꽂아 넣고 도서관에서 내쫓기듯 나왔다. 도서관 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도서관 안에 사람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도서관 지하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먼지 쌓인 소파에 눕고, 소파 앞 테이블에 먹을 컵라면과 빵, 우유를 늘여놓고, 옆에는 충전기를 연결한 핸드폰을 세워서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놓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실현해도 괜찮을 만한 상상이었다. 기숙사에 돌아가는 것 보다 훨씬 쾌적하고 자유롭기까지 했다. 순간 나를 깨운 학생이 내가 도서관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수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이 도서관을 떠나 도서관 건물 3층의 독서실로 발을 옮겼다. 

 

불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독서실 문이 열렸다. 독서실은 휴게실처럼 사람이 가득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사람이 근처에 앉아있지 않은 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독서실 책상은 양옆으로 길쭉한 칸막이가 쳐 있어 아늑하고 상대방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독서실 안의 사람들은 두꺼운 전공 서적을 펼쳐 놓고 공부를 하거나 노트북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목적이 있어서 독서실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조금 전 도서관에서 잠이 들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까무룩 잠자리에 드는 것뿐이었다. 이마엔 아토피처럼 발간 자국이 동그랗게 났고, 팔은 오랫동안 굽혀져 있고 잘 펴지지 않았다. 나는 입고 온 코트를 이불 삼아 머리에 뒤집어쓰고 책상에 엎드렸다.

 

몇 시간이 지난 건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시야는 파랗고 어지러운 물결에 휘청거렸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뱃속에선 만드라고라의 비명처럼 꾸르륵하는 소리를 뱉어냈다. 독서실에 있던 사람들이 한둘씩 떠나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서실은 오후 11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나는 이제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이 확 풀렸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룸메이트 둘을 보아야 하는 막다른 길에 놓인 내 처지가 비참했다. 둘은 이제 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 올려 세수를 하고, 분홍색 패턴이 그려진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것이다. 어쩌면 둘은 그날처럼 화제를 나로 삼아 나를 물어뜯고 찢어발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숙사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이제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있어도 되는, 있기를 바라는 장소가 학교 안에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적전, 나는 기숙사 건물 안 공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변기가 놓인 칸이 두 개, 청소하시는 아줌마가 걸레를 빠는 수도꼭지가 있는 칸이 하나, 청소도구함을 보관하는 칸이 하나 있었다. 나는 가장 안쪽에 있는 변기에 앉았다. 오랫동안 요의를 참아왔던지라 화장실에서의 시간이 꽤 오래 흘러갔다. 나는 아직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인터넷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경험담이지만,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건 지저분할뿐더러 그 비참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20분이 넘는 시간을 버텨 본 적은 있었다. 핸드폰만 있으면 간단한 일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서 트위터, 디시인사이드에서 외방 커뮤니티까지 인터넷 순회를 하면서 나는 시간을 보냈다. 세상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똑똑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옆에 있는 변기가 막혀서 내가 있는 칸으로 들어오려던 모양이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황급히 물을 내리고 밖으로 나오는 나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대충 손을 씻고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기숙사 방 앞으로 갔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방문 열쇠를 잡는 내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처음 들어가 보는 것도 아니면서 기숙사 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긴장했다. 방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방문을 열었다. 온종일 버텼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더는 너희들을 피해 있을 곳도 없다고 되뇌면서. 내 예상과는 다르게 불 꺼진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돌아올 걸 미리 알고 있던 그 애들은 외박계를 쓰고 나가서 잠을 자려 한 모양이었다. 이럴 거면 쓸데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빨리 방에 돌아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이도 닦지 않고, 불도 켜지 않고 바로 침대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은 엄마의 뱃속처럼 편안하기도 했고, 멸망한 세계의 폐허처럼 쓸쓸하기도 했다. 나는 이불 속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좋은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나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오늘의 나는 하루 종일 떠돌아다녔다. 집에서 기숙사로, 강의실에서 휴게실로, 도서관에서 독서실로, 화장실에서 다시 기숙사로. 분홍빛 청춘의 일과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처참한 그 경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도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걸 원하지 않아 했다는 것. 혈육인 엄마에서부터 데면데면한 사이의 동기들, 심지어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내가 머무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비자발적인 유목민으로, 떠돌이로 하루를 보냈다. 누워 있는 눈 양쪽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나는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애초에 내가 있어야 할 장소 같은 게 있기는 한가. 나는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랜덤으로 나오는 노래는 일본 밴드 ‘키린지’의 노래인 ‘드리프터’였다.

 

설령 슬픔이 늦은 밤, 잠에서 깨어 

짐승처럼 나를 덮친대도

간절한 기도를 까마귀가 갈라놓고

유탄 같은 빗줄기가 퍼붓는다 하더라도

이 거리 하늘 아래 당신이 있는 한 나는 물러서지 않아

 

드리프터, 떠돌이, 전전하는 자. 과연 내게도 ‘당신’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있을까. 오늘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나는 또다시 학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한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쩌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나의 떠돌이 생활은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모든 걸 여기에서 그만두고 싶어졌다. 나의 존재를 원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내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창문을 열어 보았다. 내 방은 2층에 있어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고 다리만 조금 다칠 것처럼 보였다. 하늘에 뜬 달은 500원짜리 동전처럼 크고 부옇게 빛났다. 오늘은 슈퍼 문이 뜨는 날이었다.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통신사에서 온 문자였다. ‘고객님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데이터 50% 쿠폰을 드립니다. 1년에 한 번뿐인 고객님의 생일을 더욱 특별하게 보내보세요~’라는 내용이었다. 12시 종이 울린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음을 흘렸다. 이젠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통신사 문자에서 위로를 받아 뿌득뿌득 살아가는 꼴이라니.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흐르는 눈물을 쓱쓱 닦아냈다. 이 세상에 아직 내가 존재하는 걸 원하는 사람도 있긴 하구나 하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 군청색의 밤바람이 불어와 소금기 묻은 눈가를 말려주었다. 나는 떠돌아다녔던 어제를, 또다시 떠돌아다닐 오늘을 위해 눈을 감았다. ‘생일 축하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가작 - 수상소감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졌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스스로를 변화시킬 힘도, 문제를 해결할 만 한 행동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을 뚫고 나와 몸 전체로 번져 가는 추악함의 잔재를 잉크로 삼아 백지 위를 가득 채워 나갔습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정신없이 써내려가는 동안 저는 느꼈습니다. 이거야말로, 이 더럽고 한심하고 나약한 글 조각들 이야말로 나 자신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저는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제 소설이 공모전에 당선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모전 결과 발표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야 제 머릿속에는 하나의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그만 너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고.

감정에 휘둘려서 거칠게 써진 글임에도 과분한 상을 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드는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 하시는 부모님께도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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